뉴스래빗 청년공감 기획, '청년 표류기' 6회
추석 연휴에도 일하는 청년을 만나다

불편함 혹은 복잡성 함께 짊어지는 사회
'카트'-'송곳'이 그렸던 헬조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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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취업포털 조사를 보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구직자의 81.5%는 추석 연휴 때 일을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추석 연휴 전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에는 이처럼 고향 대신 돈을 선택한 단기 알바 청년 10여명이 몰렸다.

풍요롭고 여유로워야 할 명절, 이 청년들은 왜 마트 카트를 옮기고, 주차장을 지키는 알바를 택했던가. 기자와 이들이 알바를 하러 온 이유는 달랐다. 3일 간 일하며 느낀 바도 달랐다. 다만 알바생이 아닌 손님으로 다시 마트에 간다면 이번 추석의 교훈을 또렷하게 기억하리라 싶다.

#영상 마트 카트는 이렇게 채워진답니다

마트 직원을 따라 2층 직원 휴게실에 도착했다. 휴게실 옆 작은방에서 푸른색 유니폼을 입었다. 왼쪽 가슴에 '카트/주차' 명찰을 달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 기업 계열 마트지만 사실 이 곳 휴게실은 비정규직 직원들이 주로 상주한다.

근로계약도 하청업체 소장과 맺었다. 영화 '카트', 만화 '송곳' 속 비정한 마트 풍경처럼 제품 소싱 및 매장 직원 관리 감독은 정직원이 맡는다. 마트 구석구석에서 개미처럼 일하는 계산원, 판매사원 그리고 기자같은 카트 관리, 주차 요원 등 단기 알바생은 모두 하청 소속이다. 번듯한 넥타이를 맨 사람 빼면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셈이다. 그렇게 12일부터 연휴 첫날 14일까지 매일 9시간(1시간 휴식)을 일하고 6만원을 버는 미생(未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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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지나가겠습니다. 조심하세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마트 직원이 10개씩 묶인 카트를 끌고 오며 말했다. 직원들은 2층 에스컬레이터, 주차장, 창고 등에 널부러진 카트를 수거해 기자 앞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추석 대목을 맞은 대형마트 1층엔 300여개 카트 군단이 숨죽여 손님을 기다렸다. 이내 추석 준비에 골몰한 바쁜 도시인들이 마트로 밀려 들어왔다. 카트는 빠르게 소진됐다.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대부분이 빠져나갔다. 카트와 손님 수는 반비례했다.

남자 알바생 한 명과 카트를 지켰다. 손님들은 카트 자물쇠를 열려면 100원 동전이 필요함을 익히 안다. 하지만 동전 따위를 준비해 오지 않았다. 기자는 플라스틱 막대기로 연신 카트 연결고리를 풀어 손님에게 건넸다. 손님이 동전을 준비해야하는 불편함 혹은 복잡성을 덜어주는 일이었다.

카트는 이내 동날 기세였다. 매장 밖에서 200여개 예비 카트를 다시 들여와야 했다. 한 번에 10개씩 묶어 옮기라는 지시였다. 한 번에 많이 옮기다가는 자칫 손님과 부딪힐 수 있는 탓이었다. 출입문 앞 시각장애인용 보도 블록에 카트 바퀴가 걸릴 때면 더 힘껏 밀어야했다. 매장 밖은 경사가 있다. 카트를 놓치면 금방이라도 사람 다니는 길로 떠내려간다. 1시간 가량 쉼 없이 매장으로 카트를 밀어 넣었다. 10개 씩 스무번, 카트 200개를 수혈했다. 땀으로 젖은 옷을 바람에 말리던 차, 기자를 휴게실로 처음 인도했던 직원이 음료수 하나를 건네며 물었다.

“힘드시죠?”

애써 웃으며 "할만하다" 말했다. 서른 아홉인 그는 이 곳 2년을 포함, 대형마트 일만 10년 넘게 잔뼈가 굵었다고 했다. “힘들지 않으세요?” 역으로 물었다. 사실 그도 마트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하청업체 소속으로1년 단위로 마트 파견직으로 일한다. 매해 월급도 5만원이 오를까 말까 한다 했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힘들다 생각하면 진짜 힘들어요. 비정규직에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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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비운 그 사이 1층 매장 앞 카트는 또 바닥을 드러냈다. 추석을 앞두고 식료품과 선물 세트 등을 파는 1층에 손님이 끊임없이 몰려서다. 수거해온 카트까지 채웠지만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다소 여유가 있는 2, 3층 카트가 1층으로 집결했고 다시 손님과 함께 매장 속으로 사라졌다. 블랙홀 같은 매장 속으로 빨려들어간 카트는 다시 장을 다 본 손님을 따라 각층 주차장, 매장 밖 거치대에서 바퀴를 멈췄다. 간혹 거치대가 아닌 마트 주변 길가, 쓰레기통, 화장실 앞에 미아처럼 버려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돌고 도는 카트를 쫓아 알바생들도 쉼없이 움직여야했다. 제자리에 카트를 돌려놓을 시간도 없는지 바쁜 도시 손님의 불편함 혹은 복잡성을 덜어줘야 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 같아요.”

카트를 받아주던 여자 알바생이 웃으며 말했다. 서른 언저리로 보이는 얼굴. 다소 넉넉해진 카트를 사이에 두고 연휴에 일하러 온 사연을 물었다.

“저희 집이 큰집이라 도망 왔어요. 집에 있으면 친척들이 시집 안 가냐고 자꾸 묻거든요. 잔소리를 들을 바에 일하러 왔죠.”

일은 힘들지 않냐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다리 아픈 거 빼곤 힘든 건 아닌데, 별로라고 생각하는 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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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임무 중 하나는 손님이 카트에 버리고 간 온갖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이었다. 쓰레기를 모아놓은 카트를 보여 줬다. 쓰레기를 비운지 1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차올랐다. 시식용 종이컵 및 즉석 식품 용기, 일회용 봉지, 커피 용기, 전단지 등 다양했다. 이들은 그마나 건조해서 다행이었다.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과 마시다 만 음료, 녹은 얼음이 범벅이 된 젖은 쓰레기들은 곤욕이었다. 누가 봐도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카트는 오목하고 넓은 배 속에 함께 버려진 쓰레기를 말없이 품고 있었다. 마치 이 쓰레기 친구도 나와 함께 길을 잃고 버려졌다고 말하는 듯 했다. 카트와 쓰레기의 제자리를 고민하며 다시 이들을 버린 도시 손님들의 불편함 혹은 복잡성을 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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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되자 40분 간 저녁시간이 주어졌다. 3층 직원식당에서 4000원짜리 밥을 게눈 감추 듯 먹고 2층 직원 휴게실로 내려왔다. 이미 주차, 카트 요원들이 지친 몸을 뉜 채 쉬고 있었다. 짬을 내어 눈을 붙이는 순간에도 무전기는 켜놓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한 알바생이 밥 대신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는 중이었다. 넌지시 추석인데 고향에 안 간 이유를 물었다.

“취업 준비 중이라 괜히 불안하고, 불편해요. 마케팅 쪽 지망인데 준비할 게 많더라고요.”

알바비는 학원비에 보탠다고 했다. 마트 일이 힘들긴 해도 지금처럼 쉬는 시간이 있어 버틸만 하다고 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며 카트 집합지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탔다. 저녁 먹고 장 보러 온 가족 단위 손님들로 매장은 시끌벅적했다. 그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장 보러 온 사람들 보니깐 부모님 생각 나네요. 학원 진짜 열심히 다닐 거예요."

기자도 가족 단위로 마트에 온 사람들을 보며 부모님을 떠올렸다. 어릴적 키만 한 카트를 끌고 다니는 게 신났다. 마냥 놀 수 있던 명절을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그도 역시 어린 시절과 부모님을 떠올렸을까. 할 수만 있다면 이 청년의 불편함 혹은 복잡성을 덜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감성에 젖던 찰나 무전이 울렸다.

“재근 씨, 외부 한 바퀴 돌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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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가장 심한 1층 주차장 입구 앞, 카트 20여 개가 쌓여있었다. 원칙대로면 10개 씩 두 번을 옮겨야 하지만 자신감이 좀 붙었다. 한 방에 옮기기. 카트 잠금장치를 모두 걸고, 있는 힘껏 밀었다.

경사를 넘지 못한 카트는 옆으로 돌기 시작했다. 카트 뭉치가 다시 경사 아래 거치대로 돌아가겠다며 완강히 저항하던 찰나 “으쌰” 하고 한 손님이 카트를 잡아줬다. 성인 두 명이 밀자 금세 카트는 매장으로 들어왔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그는 미소로 답하며 장을 보러 갔다. 알바생의 불편함 혹은 복잡성을 함께 짊어지는 손님도 있구나 싶었다.

3일 간 마트에서 일하며 알게 모르게 서러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남들 쉬는 날 쉬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손님이 무심코 내뱉는 반말, 내팽겨치는 카트, 빨리 달라는 핀잔, 눅눅한 쓰레기, 그리고 이 모든 불편함 혹은 복잡성을 묵묵히 해결하는 비정규직 및 알바생들을 볼 때 참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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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레리 테슬라는 '복잡성 보존의 법칙'을 주장했다. 누군가가 편의를 본다면, 누군가는 그 편의만큼의 불편을 짋어진다는 이론이다. 거리에 똥이 없다고 해서 아무도 똥을 싸지 않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그 똥을 치우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총알 택배' 서비스 이면에는 자신의 몸을 총알 같은 속도로 내던지며 뛰어야하는 택배기사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불편함 혹은 복잡성 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결했을 뿐 결코 그 불편함 혹은 복잡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은 이치다.

손님이 카트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 동전을 넣고 카트를 빼는 번거로움,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부끄러움 등 복잡성을 덜어주기 위해 알바생들은 추석 연휴를 뛰어다녔다. 그 불편함을 대신 짊어진 대가로 하루 6만원을 손에 쥐었다. 시간당 7500원꼴. 내년도 최저임금 6470원보다 1000원 가량 많은 돈이었다.

다만 복잡성을 대신 짊어진다고 해서 타인에게 무시받을 이유는 없다. 복잡성을 함께 짊어지려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사회는 더 따뜻한 곳이 되기에 그렇다. 복잡성을 외면하고 타인, 특히 약자에게 전가하려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그야말로 '헬(지옥 ·hell)'로 변모한다. 헬조선의 그 헬 말이다. 아이, 장애인, 여성, 소수자, 동물 등 약자를 대하는 시민 의식이 그 사회의 수준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3일간 카트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함께 했던 알바생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시집 잔소리를 피해 온 알바생은 차라리 잔소리 듣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 말했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온 알바생은 내년엔 취업해 당당하게 고향에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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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표류기’ ?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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